과천에 살어리랏다

과천에 살어리랏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남태령에 오른다. 맑고 시원한 공기가 폐부를 찌르면 문득 잔잔한 희열을 느낀다. 지하철을 타고 과천역의 지상의 올라설 때도 마찬가지다. 달콤하고 청량한 공기를 마시곤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린다.

부모님이 신혼의 보금자리로 정해 주신 과천에 1984년부터 살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과천은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뿌리칠 수 없는 운명처럼 그것은 줄곧 내 인생을 지배하는 커다란 존재로 자리매김되었다.

35㎢의 면적에 인구 약 6만의 과천은 경기도의 작은 도시다.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아파트 주거형태가 대다수라 전원도시이면서 베드 시티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시도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곳이면서 양쪽의 장점을 고루 갖춘 곳이 바로 과천이다.

지난 30여 년간 과천은 많이 변했다. 시 승격과 함께 서울 전화로 편입되었고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었으며 강남 못잖은 부동산 광풍이 불어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나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함에 따라 지역 경제가 침체되었다. 최근 재건축의 호재로 부동산 시세가 다시 상승일로에 있다. 동시다발로 이뤄진 재건축의 진행으로 시 곳곳에 도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건물 잔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사위는 어두운데 불빛 한 줄기 없는 폐허는 흡사 폭격 맞은 마을을 연상케 했다. 새롭게 단장될 아파트를 맞기 위한 통과의례이겠지만 그 순간만은 내 살을 도려낸 듯 가슴이 저려 왔다.

극장, 예식장, 숙박업소, 건축 중인 병원 등이 사라진 이후 과천은 문화, 복지 시설의 미비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하지만 녹지가 많고 도로가 잘 정비되었으며 시민의식이 성숙한 과천은 여전히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과천에 한번 정착하면 떠나기 싫고 떠난 사람들은 다시 오고 싶어 한다. 과천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 또한 오래도록 있고 싶어 할 만큼 근무여건이 편하고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혼 주거지의 영순위로 꼽히는 곳이 바로 과천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뒤 재산을 정리하고 아들 따라 과천으로 이사 오셨다. 처제들도 셋이나 언니 뒤를 따라 과천으로 옮겨와 다들 크게 만족하며 살고 있다.

다른 여러 지역에 살아 보지 않고 또 과천을 속속들이 모르면서 과천이 가장 낫다고 내세울 수 있을까? 과천을 기리고 사랑하는 데는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고 더 이상의 비교는 부질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과천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과천을 둘러싼 자연환경이다. 과천같이 작은 도시에 큰 산을 둘씩이나 끼고 있음은 천혜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물질만으로 살 수 없듯이 도시 또한 문명만으로 그 명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과천의 주변 환경은 보이지 않지만 과천에 결핍된 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선사해 준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우뚝 솟은 산의 기상, 그리고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과 나무, 지저귀는 새들로부터 약동하는 생명력을 배운다. 관악산과 청계산은 과천의 젖줄이자 과천을 영원히 지켜 주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다.

과천에 처음 살았던 곳은 13평 아파트였다. 7.5평 아파트는 짝수라고 석유 보일러인데 우리 집은 연탄을 난방으로 썼다. 추운 겨울날 한밤에 깨어나 그것을 갈 때 나는 독한 냄새에 숨이 막히곤 했었다. 두 애를 낳고 키우며 소담한 미래를 꿈꾸었다. 아들놈이 슈퍼맨 흉내로 놀이터 기구에서 뛰어내려 팔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증손자를 돌봐 주시던 외할머니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돌아가신 일은 내내 안타깝고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은 남들이 이해 못할 삶의 전환을 꾀했다. 수십 년 살아온 아파트를 팔고 단독 주택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청계산 아래 구옥을 헐고 새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큰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벅찬 일이지만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진정한 삶의 질과 가치가 무엇인지 자문해 왔는데 그것이 바로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작고 아담한 정원을 꾸미고 이웃과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 개방하려고 한다. 가까운 산으로 매일 산책 나가 자연과 더불어 영혼을 살찌우는 대화를 나눌 것이다.

과천을 돌아보며 부딪치는 사물들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초라한 길섶의 풀 한 포기부터 잘 짜여진 도심 거리의 빌딩들, 숲속과 양재천에 뛰노는 수많은 동물들까지 모두 정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과천에 오래오래 살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과천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신선한 감동과 매력은 삶의 활력소로 바뀌었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어 주었으며 앞날의 꿈과 행복을 꾸려나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5월의 햇살이 오늘따라 눈부시다. 그것은 맑고 깨끗한 과천의 하늘을 가득 비춰 주고 있다.

과천을 2행시로 푼다면

과천은

과연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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