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상경

이와 같이 광모는 들었습니다. 한때 콩콩이는 세종시의 한 카페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다섯 명의 소방관들에게 설하였습니다.

콩콩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방관들이여, 자식을 낳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입니다. 만일 출산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면, 자식은 평생 병과 고통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내 자식이 이렇게 되기를, 내 자식이 저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가 없기에, 자식을 낳는 것은 필연적으로 방관자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지닌 물질과 자식이 평생 겪을 정신적 경험 상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방관들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식은 영원합니까 혹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영원하지 않은 것이 고통스럽습니까 혹은 즐겁습니까.

—고통스럽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영원하지 않으며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이것은 나의 딸과 아들이며, 이것이 나의 분신이며,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따라서, 자식이 유치원 야간반을 졸업하든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오든, 마이나스 통장을 쓰든 갭투자로 강남 건물주가 되든, 자식이 카톡을 씹든 이모티콘으로 답하든, 이 자식은 나의 것이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며, 나 자신이 아닌 것입니다. 자식이 지닌 재산과 자식이 경험하는 희노애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방관들이여, 따라서 고귀한 방관이라면 자식이 자신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그에게는 집착이 없으므로 고통 또한 없습니다. 고통이 없기에 그는 자신을 각성하며 공로연수에 들게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상기 본인은 더이상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누군가를 더이상 태어나게 하지도 않는다. 해야될일은 끝났고 성스러운삶이 완수되었다. 더이상의 깨달음과 고통은 없다.”

콩콩이가 설법을 한 후 방관이들은 평생이 당직휴무인 것 마냥 자유감을 얻었습니다. 방관이들은 콩콩이가 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으며, 그 후에 그들은 말씀에 따라 기쁘게 매달 20일 봉급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