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후배와의 악연

1985년 11월 14일 제2회 주요섭 문학상 시상식(수상자 소설가 최진우 박사)

2007.4월 군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막 시작한 무렵이었다. 버스로 출근 중인 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10년 대학 후배인 김호진(가명)이었다. 선배님께 죄송하지만 500만원을 융통해 줄 수 없냐고 했다.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는 당연한 내 물음에 그는 입원한 어머니 병원비에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다급하거나 처지가 그래서겠지 정도로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내게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즉석에서 승낙하고 저녁때 만나기로 했다. 내 무른 성정이 문제였다. 누구에게 신세를 지면 언제든 조금이라도 갚아야 마음이 편하고 사람의 도리라는 신조로 살아 왔다. 당시 W은행 차장인 그에게 두 번 도움을 받았다. 하나는 내가 자비로 출간한 책을 여러 권 팔아 준 것이고 또 하나는 가계당좌 개설을 수월히 해 준 일이다. 요건은 되지만 가계수표 발행을 꺼리는 은행에선 여간해 해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은행 자동화기기 앞에서 후배와 만났다. 그는 연신 몸을 옹송거리며 미안한 말과 몸짓을 보였다. 정작 만나니 100만원을 늘려 달라고 했고 나는 한 치의 의심 없이 달랑 1주일 기한의 차용증 한 장만 받고 600만원을 송금해 줬다. 예금 잔액은 부족했으나 나는 신용대-이것이 훗날 똑같은 금액으로 사기당하는 온상이 되었으니 참 얄궂은 운명이다-1,000만원을 쓸 수 있어 가능했다. 다시 허리를 깊숙이 꺾은 그의 눈빛은 나를 특별한 은인 대하듯 했다. 약속한 날이 왔지만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 품었던 일말의 불안감이 현실화되었다.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더니 내가 그 꼴이 되었고 서로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며칠에 한 번씩 연락해 변제를 재촉했다. 갈수록 내가 아쉬운 사람처럼 사정하고 애걸하는 형 편이 되었다. 그의 입에서는 항상 곧 갚겠다는 판에 박은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것은 번번이 공수표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다 두 달 뒤엔가 50만원을 내 통장으로 보내줬다. 자기를 믿 고 선뜻 꿔준 선배에게 최소한의 양심과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가. 사람 심리가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일부라도 갚았다는 것은 나머지도 갚을 의사가 있는 것 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한다. 그를 저녁때 불러 밥을 사 주기까지 했다. 그때만 해도 시일이 좀 걸릴 따름이지 돈을 다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독촉하는 나보다 더 끈질기게 꼭 갚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곤 그것을 이행치 않았다. 차용증에 공증을 받 을까 했으나 때를 놓쳤다는 생각에 주저주저했다. 마지막까지 그에 대한 실날같은 기대를 버 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인간성과 확실한 사회적 지위를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 의 예금을 조사해 봤더니 1,000만원 쯤 있으나 예금담보대를 받았다고 했다. 승용차에 압류를 넣을까 했으나 귀찮기도 하고 실익이 없을 것이다 싶어 미루고 있었더니 어느새 본인이 처분 해 버렸다. 그런 경험이 없는 얼치기가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는 격이었다. 상황을 유추해 봤다. 어머니 입원비란 구실부터가 거짓이었다. 사실대로 얘기해 봤자 빌려 줄 사람 없을 테니 한국인의 정서를 빌려 그런 이유를 댔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려니 목소리가 떨려나왔을 것이다. 절박한 처지에 자기가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모두에게 거절당하다 내가 승낙하니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가 밝히진 않았 으나 내 지난날에 비추어보건대 주식을 하다 손해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가진 돈을 다 날리 고 대출금에 사채까지 있는데 그 중 급히 메꿔야 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동은 달랐지만 직선거리로 아주 가까웠다. 그러나 주거지의 근접성은 채권 회수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직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 었기에 퇴근 이후 어떻게 해보지 않고는 도리가 없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작심하고 그의 집을 쳐들어갔다. 예견한 듯 별로 놀라지도 않고 문을 열어 준 그는 공부시키던 딸을 옆방으로 보내고 나와 마주앉았다. 멀지 않아 명예 퇴직할 예정인데 퇴직금이 약 2억쯤 될 것이라 선배님 돈은 문제없이 정리해준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금으로 갚아줄 수도 있다. 수도 없이 그의 식언에 기만당한 내가 담보를 내놓으라고 거칠게 몰아붙였을 때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 때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흐리멍텅하고 어두웠는데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분통이 터질 일이 발생했다. 짚이는 게 있어 어느 날 낮에 그의 집에 가 봤더니 주인이 바 뀌어 있었다. 며칠 전 의왕시로 이사 갔다고 알려주는 말에 온몸의 맥이 다 빠져버렸다. 그 사실을 미리 들었음에도 눈앞에서 놓쳐버린 참담한 실패의 쓴맛이란! 그렇다고 이사일에 그와 맞닥뜨렸다고 과연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까. 직장에 전화해 보니 후배는 벌써 퇴직했다 한다. 그때는 이미 그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전화를 전혀 받지 않았는지 통화정지 중이라 했던지 그것조차 세월이 오래 흐른 지금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애초 몰랐고, 없었던 인간인 것처럼 완전히 소식이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내게 도움을 준 만큼 착하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후배를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이제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는 철저한 거짓말쟁이에 비겁하고 더러운 인간이었다. 돈을 당장 갚기 어 려우면 나와 대면해 솔직히 자신의 현 상황을 밝히고 내 이해를 구했어야 할 게 아닌가. 반드 시 갚겠다고 끊임없이 선배를 속이다 도망가 버리고 말다니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나는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겨우 종이 한 장 받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을 빌려줬는데 내 순수한 호의와 도움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짓밟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건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문득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그것에 온통 정신을 쏟고 있자니 부동산 일에 소홀하게 되고 동업자는 짜증을 내곤 했다. 돈보다 인간에의 믿음을 저버린 그의 악행을 향해 마냥 욕을 퍼부었다. 나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발걸음한 곳은 관할 경찰서였다. 그를 사기죄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처음부터 변제할 의사가 없음에도 나를 기망해 돈을 편취했다고 진술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억지 같았고 접수 받는 경찰관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고 고개 를 갸우뚱거렸다. 어쨌든 고소장을 제출한 나는 돈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후련했다. 내가 겪 은 불행을 너도 맛 좀 봐라는 복수의 심보였다. 집에서 알면 안 되기에 내 주소를 여동생 집 주소로 바꿔서 적었다. 그래서인지 그 후 경찰서 등으로부터 아무 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마음을 돌려 보기로 했다. 나와 그는 전생에 반대의 입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까. 내가 그에게 고통을 줬기에 현생에 와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에서 작은 위로가 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2,3년쯤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된 차용증을 북북 찢어버리고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내게는 다른 할 일이 많았다. 아직 창창한 앞날에 그 따위가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