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님의 침묵

초기콩콩교에서 무기(無記, avyākṛta)란 콩콩이가 어떤 질문들에 대해 답변이나 언급을 회피한 채 침묵을 지키는 것을 말해요. 즉 무기란 주로 ‘세계의 무한성과 유한성’ ‘영혼 혹은 생명과 신체의 동일성 여부’ ‘수행의 완성자인 여래(如來)의 사후의 존속 여부’ 등 부동산 재태크나, 밥먹고 똥싸는 문제, 기타 실존적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들에 대해 침묵하는 태도를 말해요. 이러한 무기설(無記說)은 질문의 종류에 따라 10무기나 14무기, 혹은 16무기 등으로 불려요.

소방관들 중에서도 간혹 세계의 창조나 종말, 사후의 윤회문제, 그리고 영혼이나 생명과 신체의 동일성 여부나 자기정체성의 문제 등을 궁금해 하는 방관이들이 있어요. 21세기 초에 콩콩이와 함께 근무했던 당시의 소방 자유사상가들(소방外道)도 10무기나 14무기 등에서 행해진 질문들을 주요한 관심사로 삼았어요.

그 당시에 콩콩이의 제가 가운데 광모도 외도에 속했던 인물이었는데, 콩콩이가 뛰어난 사상가라는 얘기를 듣고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 세종시의 한 북카페로 그를 찾아갔어요.

이와 관련하여 ‘콩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어요. “콩콩이시어 제가 홀로 당번근무에 들어있을 때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영혼은 육체와 같은가, 육체와 다른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어요. 그러나 콩콩이께서는 이런 의문에 한 번도 답변해 주시지 않았어요. 저는 콩콩이께 이러한 것을 묻고 싶어요. 만약 콩콩이께서 저의 이러한 의문에 답변해 주신다면, 저는 그 가르침 안에 머물며 거룩한 삶을 따를 것이에요.”

콩세존께서는 광모에게 말씀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방관이의 집에 불이 나 최성기 화재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방관이가 아직 이 화재를 진압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화재가 연소의 3요소인 연료(가연물), 열(점화원), 산소 등 3가지 조건이 갖추어 진 것인지, 보통 화재, 유류화재, 전기 화재, 금속 화재 중 무엇인지, 불의 성장과 확산이 전도, 대류, 복사 중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소화를 하기 위해 가연물 제거, 냉각, 산소 차단 중 어떤 방법을 채택할 것인지를 알아야 이 불을 끌 것이라고 한다면, 그 방관이의 집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전소하고 말 것이다.”

원글 :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273

무자상경

이와 같이 광모는 들었습니다. 한때 콩콩이는 세종시의 한 카페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다섯 명의 소방관들에게 설하였습니다.

콩콩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방관들이여, 자식을 낳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입니다. 만일 출산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면, 자식은 평생 병과 고통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내 자식이 이렇게 되기를, 내 자식이 저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가 없기에, 자식을 낳는 것은 필연적으로 방관자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지닌 물질과 자식이 평생 겪을 정신적 경험 상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방관들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식은 영원합니까 혹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영원하지 않은 것이 고통스럽습니까 혹은 즐겁습니까.

—고통스럽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영원하지 않으며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이것은 나의 딸과 아들이며, 이것이 나의 분신이며,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따라서, 자식이 유치원 야간반을 졸업하든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오든, 마이나스 통장을 쓰든 갭투자로 강남 건물주가 되든, 자식이 카톡을 씹든 이모티콘으로 답하든, 이 자식은 나의 것이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며, 나 자신이 아닌 것입니다. 자식이 지닌 재산과 자식이 경험하는 희노애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방관들이여, 따라서 고귀한 방관이라면 자식이 자신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그에게는 집착이 없으므로 고통 또한 없습니다. 고통이 없기에 그는 자신을 각성하며 공로연수에 들게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상기 본인은 더이상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누군가를 더이상 태어나게 하지도 않는다. 해야될일은 끝났고 성스러운삶이 완수되었다. 더이상의 깨달음과 고통은 없다.”

콩콩이가 설법을 한 후 방관이들은 평생이 당직휴무인 것 마냥 자유감을 얻었습니다. 방관이들은 콩콩이가 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으며, 그 후에 그들은 말씀에 따라 기쁘게 매달 20일 봉급을 받았습니다.

콩콩이는 니체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20소방청장 정문호 중앙119구조본부 호남119특수구조대 격려방문사진 (2)

콩콩이는 순천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하고 독특했던 아이로 추정되요. 대학교를 졸업 한 후 사기업 몇군데서 일을 하였어요. 이 때의 경험이 콩콩이의 장래희망이였던 소방서 행정 주임을 실현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답니다. 광주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던 중 콩콩이는 소방간부후보생 시험에 지원을 해요. 합격 후에 상사의 인정과 부하직원의 호감을 받으며 콩콩이는 소방청에서 주로 일을했어요. 왜냐면 콩콩이는 너그러운데다가 유머러스하며, 일도 잘하고, 부하직원에게 밥도 잘 사는 외유내강 형의 인물이였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콩콩이는 실존주의자, 무신론자로서 본연의 관심사항인 존재의 의문을 놓지 않았어요. 광모가 높게 평가하는 강병균이나 유발 하라리, 샘 해리스 같은 자들은 그에게 얼치기에 불과하였어요. 한 때 콩콩이는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깊이 사숙하면서도, 진화생물학이 암시하고 있는 삶의 근본적 무본질성에 저항하고자 하였어요. 하워드 가드너는 ‘creating minds’에서 고전역학의 기본 전제가 붕괴되려고 하는 시점에서의 헨드릭 로런츠의 작업을 “실험적 사실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려는 배를 구하려는 영웅적인 선장의 행위”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기존의 교통 수단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다른 교통편으로 갈아 타는 창조적인 행위”로 비유했어요. 인간 문제를 대하는 콩의 태도는 이 둘 사이를 오고 갔어요. 그는 결국 리처드 도킨스, 미치오 카쿠와 같은 유물론자들의 접근 방식을 인정하되 이러한 것들은 사실의 영역일 뿐 의미와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답니다. 양자역학 보다는 신학이 콩콩이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그러한 맥락 속에서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동서양 철학의 고전들을 정주행 후에 바트 D. 어만과 같은 위대한 꼰템포레리 신학자들의 저서를 탐독하였고, 마침내 토리노의 말을 탄 진정한 반출생주의자의 기수로 거듭나게 되어요. 콩콩이는 아마추어 신학자이자, 불가지론자, 소방행정관료, 자본주의 옹호자, 가상화폐 부정론자, 다음 카페 운영자, 중산층, 커즈와일의 특이점 이론의 지지자, 이 모든 얼굴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여자는 콩콩이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그는 행복하게 살았어요.